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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LIFE

마라도나 사망 골 동영상

by 무지개 처럼..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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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 사망 나이 

세계적인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축구계 뿐 아니라 전 세계 각계각층이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마라도나는 26일(이하 한국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티그레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60세.

 

 

'축구의 신' 마라도나, 그라운드와 영원한 이별

'축구의 신' 마라도나, 그라운드와 영원한 이별

www.yonhapnewstv.co.kr


26일(한국시간)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일제히 마라도나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숨졌습니다. 그는 지난 11일 뇌 수술을 받은 후 퇴원해 회복 중이었습니다. 당시 주치의는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밝혔지만, 끝내 버티지 못했습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그의 사망 원인은 심장마라고 합니다.  
 
마라도나는 시대의 축구 영웅이었습니다. 1976년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아르헨티나)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보카 주니어스(아르센티나), 바르셀로나(스페인), 나폴리(이탈리아)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프로생활에서 정점을 찍은 곳은 나폴리였습니다.

'약체' 나폴리를 '천재' 마라도나가 이끌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세리에 A 정상에 올려놨습니다. 세리에 A 2회 우승을 포함해 코파 이탈리아 1회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컵 1회 우승 등 나폴리를 최강의 팀으로 바꿔놨습니다. 나폴리에서는 마라도나를 '신'으로 추앙했습니다.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존재감을 알린 무대는 역시 월드컵입니다.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는 5골·5도움을 올리며 골든볼(MVP)을 수상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선보인 마라도나의 퍼포먼스는 세계 축구 팬들을 경악시킬 정도였습니다. 특히 '20세기 최고의 골'이라는 찬사를 받은 장면, 8강 잉글랜드전에서 50m를 질주하며 8명을 제친 뒤 골을 넣은 모습은 마라도나를 위상의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91경기 출전 34골을 기록했습니다.
 
마라도나가 곧 전술이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드리블러이자 공격수였고, 또 최고의 패싱력을 갖춘 미드필더이기도 했습니다. 축구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마라도나의 등장으로 세계 축구는 변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세계 축구의 수비 전술이 바뀌었습니다. 마라도나를 견제하기 위해 압박축구가 등장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선수로서는 최고였지만 감독으로서는 실패했습니다. 빅클럽을 지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2010 남아공월드컵 실패의 타격이 컸습니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라는 당대 최고의 선수를 보유한 아르헨티나는 8강에서 독일에 0-4로 참패했습니다. 마라도나 감독 전술의 실패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또 마라도나는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나온 '신의 손'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경기 외적으로는 더 많았습니다. 마약 스캔들은 마라도나를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알코올 중독, 탈세, 비만 그리고 기행과 폭언으로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습니다. 마피아 조직 포스와 파티를 벌인 일도 충격을 줬습니다. 마라도나는 "나는 많은 부정을 저질렀지만, 축구만은 더럽히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공과 과가 분명한 인물이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전 세계 축구팬들은 마라도나가 남긴 세기의 퍼포먼스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이 기간 마라도나의 시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 카사로사다에 안치됩니다. 일반인들이 빈소를 찾아 추모할 수 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습니다.
 

마라도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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